사춘기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냥 짜증 나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안 좋아요.”
사실 이 말 속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감정을 어떻게 말로 꺼내야 할지 몰라 결국 짜증이나 침묵으로만 표현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글은 “감정을 잘 표현하라”는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라, 사춘기 시기에 왜 말이 막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조금씩 말로 풀 수 있는지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풀어보는 이야기입니다.
1. 사춘기에는 왜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까?
사춘기에 접어들면 감정이 예전보다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별일 아닌 상황에서도 억울하거나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이건 성격이 예민해져서가 아닙니다. 뇌 발달 과정상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은 빠르게 반응하지만, 그 감정을 정리하고 말로 바꾸는 능력은 아직 자라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자주 생깁니다.
- 마음은 복잡한데, 뭐가 문제인지 설명이 안 됨
- 말하려고 하면 눈물이 나거나 화부터 남
- 괜히 말했다가 더 혼날까 봐 입을 닫게 됨
이런 상태에서 “말로 표현해 봐”라는 말은 사실 꽤 어려운 요구일 수 있습니다.
2.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해봤자 소용없어.” “그냥 참는 게 낫지.”
하지만 감정을 계속 참기만 하면,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 사소한 일에 폭발적으로 화를 냄
- 말수가 급격히 줄어듦
- 가족이나 친구를 괜히 밀어냄
-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생각이 늘어남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약해지는 행동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지키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3. 감정을 말로 꺼내는 가장 쉬운 방법
처음부터 감정을 잘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래 순서만 기억해도 충분합니다.
① 감정을 ‘판단 없이’ 인정하기
“이 정도 일로 왜 이래?”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마세요. 감정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느끼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 “나 지금 좀 답답해.”
- “솔직히 속상했어.”
- “기분이 별로야.”
이 정도 표현만으로도 이미 첫 단계는 성공입니다.
② 왜 그런지 ‘완벽하지 않아도’ 말해보기
원인을 정확히 몰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이런 말이 와도 됩니다.
- “그냥 무시당한 느낌이었어.”
- “나만 뒤처진 것 같았어.”
-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이래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감정은 원래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③ 원하는 걸 아주 작게 말하기
많은 갈등은 ‘뭘 바라는지’가 말해지지 않아서 생깁니다.
- “지금은 그냥 혼자 있고 싶어.”
- “조금만 있다가 다시 얘기하고 싶어.”
- “내 말 끝까지 들어줬으면 좋겠어.”
요구가 크지 않아도 됩니다. 작아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감정 단어가 부족하면 표현도 막힌다
사춘기 아이들이 자주 쓰는 감정 단어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짜증”, “별로”, “싫어” 정도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려 하죠.
조금만 단어를 늘려도 표현이 훨씬 쉬워집니다.
- 짜증 → 답답함, 억울함, 부담감
- 싫어 → 서운함, 실망, 불편함
- 괜찮아 → 사실은 무덤덤함, 포기
하루가 끝날 때 “오늘 내가 느낀 감정 한 가지”만 떠올려보는 연습도 큰 도움이 됩니다.
5. 말로 하기 힘들 땐 다른 방법도 있다
꼭 말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 메모장에 써보기
- 편지처럼 적어보기
- 문장 하나만 적어보기
“오늘은 아무 말도 하기 싫다”라는 문장도 충분한 감정 표현입니다.
6. 감정을 말하는 건 약한 사람이 아니다
감정을 잘 말하는 사람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말하다가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연습을 계속하면 분명히 달라집니다.
관계가 조금 덜 아프고, 내 마음이 조금 더 안전해집니다.
마무리 – 말 한마디가 나를 지킨다
사춘기는 감정이 많아지는 시기이지, 문제가 생기는 시기가 아닙니다.
그 감정을 말로 풀 수 있게 되면 짜증은 줄고, 오해도 줄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줄어듭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 문장만 말해도 충분합니다.
요약: 사춘기에는 감정은 크지만 표현 기술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인정하고, 짧게라도 말로 꺼내는 연습을 하면 관계와 자존감을 함께 지킬 수 있습니다.